부산에서도
지금은 치앙마이를 떠나 부산 친정에 머물고 있습니다. 부산에 오기 전에도 이상을 품고 있었습니다. 부산에 온 김에 부모님을 모시고 근사한 곳에서 식사도 하고 좋은 풍경도 보여드리고 싶었지요. 엄마가 희귀 심장 질환을 앓고 있어서 동반자 없이는 외출이 어렵거든요. 당연히 집안을 맴도는 생활을 하고 있기에, 이번 기회에 효녀 노릇을 해보자 생각했습니다.
지난 일요일이었습니다. 가족들과 집밥을 먹고 있는데, 엄마가 이제 무얼 할 거냐고 물었습니다. 부산에 온 김에 가보고 싶은 카페와 책방이 있어 대답을 얼버무렸는데, 엄마가 시티투어 버스를 타고 다대포에 가자고 하더군요. (다대포는 엄마의 젊은 시절 추억이 담긴 장소입니다.)
저는 피곤하기도 하고 밀린 일도 해야 한다는 핑계로 거절했습니다. 그런데 잠시 후 언니네 집에 가서 놀겠다는 제 말에 엄마의 표정이 쓸쓸해지는 걸 보았습니다. 아차 싶더라고요. 엄마의 제안은 거절하면서 언니와는 놀겠다는 제 모습에 엄마가 얼마나 서운했을까요.
어제 보았던 엄마 표정이 잊히지 않아 오늘만큼은 시간을 내어 엄마와 오붓하게 놀아보려 했습니다. 하지만 사람은 역시나 편한 쪽을 선택하게 되는 걸까요. 엄마와 오늘 하루 무엇을 할지 의논하다가 결국 또 엄마가 해주는 밥을 먹고, 엄마가 내려준 커피를 마시며 일을 했습니다. 부모님을 모시고 좋은 데 가겠다던 효심 가득한 이상은 어디 가고, 엄마가 해주는 밥을 축내며 냥이랑 레이저 놀이를 하고 일만하는 딸 모습뿐이네요. 일에 집중하느라 옆에서 말을 거는 엄마의 말을 흘려 듣기도 하면서요.
가끔 생각합니다. '내 이상이 너무 높은 걸까? 아니면 누구나 무언갈 해야지 마음먹었다가도, 막상 닥치면 귀찮아지는 걸까?' 하고요. 어쩌면 아직 무기력증에서 충분히 회복되지 않아 모든 게 버겁게 느껴지는 것일지도, 혹은 이제는 편안하고 소소한 즐거움을 찾는 나이가 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떤 이유든, 내일이면 '조금 더 의욕적으로 해볼걸' 하고 조금은 후회할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밤늦게라도 엄마와 영화를 보러 가기로 했어요. 요즘 핫하다는 <프로젝트 헤일 메리>를 보러 가기로 했는데요. 워낙 집에만 있는 엄마라, 작은 것 하나도 오래오래 기억하거든요. 영화 재밌게 보고 오랫동안 이야기 나눠야겠습니다. 이상 속에만 존재하는 친절한 딸을 잠시나마 현실로 소환해야겠어요.
+제 이상 속 많은 독자님도 현실로 소환합니다~ 토, 일요일 제주북페어에서 만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