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월 편집자입니다.
제주는 유채꽃과 벚꽃이 만발했습니다. 제주에서 맞는 첫 번째 봄인데, 정작 저는 한 달간의 타지 생활을 마치고 돌아와 일상을 회복하느라 조금 분주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오늘 편지에는 제주도 복귀 후 고군분투하며 적어 내려간 날 것의 기록을 담았습니다. 사적인 이야기라 망설여지기도 했지만, 구독자분들이라면 제 이야기를 다정하게 들어주시리란 믿음이 있어요. 조금 긴 일기장을 조심스레 열어 보이는 마음으로 편지를 썼습니다. 이번 편지도 즐겁게 읽어 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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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편지
[이월의 탄생] 일상의 궤도로 돌아오는 일
[함께 해요]
- 이월 편집자의 일일 책방지기 소식
- 4월 고전 독서 모임 (무료, 4월 15일 수요일 20: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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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궤도로 돌아오는 일
0324
비행기 탑승 3시간 전, 여유 있게 김해 공항에 도착했다. 친정에 있으면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서였다. 수요일은 온라인 북클럽, 목요일은 글쓰기 모임, 주말엔 북페어가 예정되어 있다. 일할 공간이 필요했다.
일찍 수속을 마치고 출국장 안 공차에 자리를 잡았다. 저녁을 먹긴 애매한 시간이고, 어느새 태국 물가에 적응되어서인지 비싼 공항 밥을 먹기 꺼려졌다. 밀크티와 베이글로 간단히 요기하며 일 처리를 시작했다.
북페어에서 선보일 글쓰기 모임 미니 에세이집 <응답하듯 삶을 쓴다>, <나는 기억한다> 인쇄를 맡기고, 책갈피 주문을 마쳤다. 부스를 꾸밀 물품도 샀다. 하얀 테이블보, 투명한 책 전시대, 하얀색 전면 책장도 구매했다.
이번 북페어 콘셉트는 ‘이월 편집자의 책상’이다. 그동안 우드톤으로 부스를 꾸몄었는데, 화이트톤으로 바꿔 보기로 한 것이다. 앞으로 북카페를 할 때, 내 책상과 집처럼 꾸며야 그 안에 있는 나도 편안한 마음이 들 것 같아 시험 삼아 해보기로 했다. 기존에 쓰던 종이 전시대가 가볍고 편리하지만, 지난 두 번의 야외 북페어에서 비를 맞는 바람에 상태가 좋지 않아 내린 결정이기도 하다. 급한 일을 처리하다 보니 출발 시간이 되어 비행기에 올랐다.
제주도에 도착해선 ‘웰컴 제주’라는 문구에 살짝 설렜지만, 이제는 관광객이 아니라 집에 돌아온 것이라 생각하니 심장 박동이 빨라졌다. 진짜 일상으로 돌아온 것이다. ‘일’이 기다리고 있는 일상.
0325-0326
수요일은 오글오글 7기 원고 피드백을 하고 북클럽을 준비하니 하루가 훌쩍 갔다. 목요일은 원고 피드백을 마무리하고 낮 모임과 밤 모임까지 하니 역시 시간이 훌쩍 갔다.
0327
아주 늦게 일어났다. 치앙마이와 부산. 한 달 가까이 이어진 타지 생활에 몸이 많이 축났나 보다. 수요일과 목요일 이틀간 집 밖으로 한 발짝도 나가지 않고 책상 앞에만 앉아 있었더니 더 힘들었나 보다. 북페어 준비를 해야 하는데, 이제야 집에 온 느낌이 들면서 긴장이 풀렸다. 쉬고 싶다는 마음이 굴뚝같았다. 하지만 시간은 흐르고, 내일은 다가오고 있으니 일을 해야 했다. 체크리스트를 보며 하나씩 처리해 갔다.
새로 산 책 전시대를 조립하고 책 소개를 제작하고, 준비물을 챙기는 일처럼 쉬운 일이었다. 그런데 전시대를 이리저리 놓아보고, 책 소개 카드 사이즈를 수도 없이 수정하고, 책을 포장하는 일이 쉽게 끝나지 않았다. 매일 하는 일이 아니다 보니, 매번 새롭고 속도가 더딘 것 같다. 아니면 몸이 피곤해서 속도가 더딘 걸지도. 남들이 보면 그 시간에 더 생산적인 일을 하거나 푹 자라고 하겠지만, 사람마다 집착하는 영역이 있지 않나. 나조차도 이것 참 비효율적이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으면서도 이렇게라도 해야지라는 생각으로 북페어 준비를 이어갔다.
0328-0329
토, 일요일 제주북페어는 성황리에 끝났다. 책 한 권을 들고 간 이월오일도 그동안 북페어 중 가장 많은 판매 실적을 올렸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몇몇 분들께 감사 메시지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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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30
월요일이 되었다. 늦잠을 자고, 책을 읽고, 다시 잠을 자고, 마라탕 3.5단계를 시켜 먹고, 내가 좋아하는 인절미 과자와 무알콜 맥주를 마셨다. 그러고 나니 기운이 나 인스타그램에 소식을 올렸다. 하루 종일 늘어져 있으면서 머릿속은 ‘북페어 후기 올려야 하는데’라는 생각이 가득했다. 머리가 아팠다.
나는 어떤 일을 할 때 오래 생각하는 편이고, 생각이 깊어져 결과물을 내는 속도가 더딘 편이다. 적절한 시기를 잘 놓친다는 뜻이다. 때를 놓친 결과물은 혼자만의 기억으로, 혹은 글로 만들어 차곡차곡 쌓아두곤 했다.
그런데 1인 사업자가 되고 보니, 생각하는 즉시 결과물을 내는 게 필요했다. 생각 즉시 하는 것. 내가 잘 못하는 부분이다. 잘하지 못하는 걸 잘하고 싶어서 챌린지도 만들고 스스로 다독여 봤지만, 잘될 때도 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아니, 그렇지 않을 때가 더 많은 것 같기도 하다. 그럼에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건, 계속 노력하면 조금씩 변할 거라는 믿음이 있어서다.
0331
2월에 잘 쌓아둔 일상은 3월 치앙마이에서 살짝 흔들렸고, 부산에서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며 크게 흔들리더니, 제주에 돌아와서 밀린 일을 하고 북페어를 치르면서 와르르 무너졌다. 그 결과 어제는 시체처럼 늘어져 있었다.
오늘은 일상을 되돌리려고 오랜만에 모닝 루틴을 했다. 눈을 뜨자마자 좋아하는 노래를 틀고 차를 우려 마시며 책을 읽었다. 최 이사가 내린 커피로 잠을 물리치고 따뜻한 치아바타와 바나나를 곁들인 아침 식사를 했다. 오늘 뭘 하지 고민하지 않고 어제 세워둔 계획대로 움직였다. 제주 단톡방에 올라오는 실시간 벚꽃 소식에 당장 그곳으로 달려가고 싶은 마음이 일었지만, 애써 외면하고 집 앞 올레길을 걸었다.
평소에 하던 일을 하고 싶었다. 늘 먹던 것을 먹고, 늘 걷던 길을 걷고, 매일 보던 풍경을 보고 싶었다. 그래야 내가 지금 한국, 제주도, 내 집, 3월의 어느 날에 존재한다는 감각이 살아날 것 같았다. 내가 이곳에 돌아왔다는 실재감을 느끼지 못하면, 몸은 제주에 있어도 머리와 마음은 계속 치앙마이에 있을 것 같았다. 육지에 있을 땐 제주를 그리워하고, 제주에 있으니 치앙마이를 그리워한다.
나는 제주 예찬론자였다. 제주도에 와서 오랫동안 앓던 접촉성 피부염이 사라졌다. 육지에 있을 땐 툭하면 얼굴 어딘가가 간지럽고 진물이 생겼다. 탈모도 심했다. 그리고 알코올 의존증에 버금가게 술을 마셨다. 그런데 제주에 와서 접촉성 피부염이 사라졌다. 특정 브랜드 화장품이 아니면 쓰지 못하던 나였는데, 쿠팡에서 가장 저렴한 수분 크림을 주문해서 써도 문제가 없다. 탈모도 사라지고 술도 끊었다.
그런데 치앙마이에 다녀와서 다시 피부가 거칠어지고 간지럽기 시작했다. 머리카락이 어찌나 많이 빠지는지 최 이사의 걱정이 깊다. 작년에 수술하고 괜찮아진 줄 알았던 잇몸도 다시 욱신거리기 시작했다. 안정적이던 일상이 무너져 몸의 균형이 깨진 것일까. 아니면 한국에 발을 디디는 순간 느꼈던 빠르고 경쟁적인 분위기에 정신이 균형을 잡지 못하는 것일까.
분명 육지보단 제주도가 여유롭고 비경쟁적인 분위기였기에 제주에 온 뒤 몸과 마음이 건강해졌다. 그런데 치앙마이에 다녀오니, 제주도도 내게는 바빠 보인다. 제주도와 치앙마이 모두 머문 기간이 짧기에 어디가 더 좋다고 말할 수 없고, 제주도는 특히 내게 소중한 곳이다. 그런데 이런 생각을 하다니.
사람이란 이렇게 만족을 모르는 존재인 걸까? 아니면 나도 <달과 6펜스>의 스트릭랜드처럼 내게 꼭 맞는 이상적인 장소를 찾는 중인걸까? 그것도 아니라면, 여행의 여운이 남아 내 마음이 일시적인 장난을 치는 걸까? 잘 모르겠다. <모순>에 나온 말처럼 살면서, 실수하면서 알아갈 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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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최 이사와 나는 “마~이 마~이 치앙~마이~, 라이 라이 치앙라이”라는 듣도 보도 못한 노래를 작사·작곡해 시도 때도 없이 부르고 있다. 치앙마이로 떠나기 전까지는 북카페 자리를 찾고 사업 구상을 하느라 마음이 초조했는데, 시장조사 겸 떠난 치앙마이에서 많은 생각이 바뀌어 돌아왔다.
그만큼 치앙마이가 좋았던 걸까 묻는다면, 글쎄다. 우리 부부는 동남아를 좋아해 자주 오갔다. 그래서일까. 치앙마이에 도착한 첫날, 너무 익숙한 풍경에 놀라고 아무 감흥이 없다는 것에 더 놀랐다. 심지어 치앙마이에는 우리가 좋아하는 바다도 없으니 재미가 없을 것 같아 괜히 왔나 싶기도 했다. 유명 관광지나 핫 플레이스에 가지도 않고, 제주도에서처럼 운동하고 일하고 밥 먹고 차를 마시는 일상을 보냈기에 특별한 일도 없었다. 그런데 치앙마이가 계속 생각난다.
15년을 살았던 경기도를 떠나면서는 속이 시원했는데, 5개월 살았던 제주도를 생각하면 내 집 같고, 1개월도 안 지냈던 치앙마이는 앞으로 오랫동안 살아보고 싶은 곳이 되었다. 신기한 일이다. 최 이사나 나나 떠돌이 팔자라 그런 걸까.
꼭 한국이 아니어도 된다는 생각이 자리 잡았다. 아주 큰 변화다. 나는 밑도 끝도 없는 상상을 자주 하고, 여차하면 실행하는 사람이지만 최 이사는 그렇지 않다. 안정이라는 가치를 최우선으로 생각해서 ‘퇴사하고 세계여행 하자’는 말을 계속해도 꿈쩍하지 않던 사람이었다. 세계여행 못 하겠으면 퇴사라도 하자고 꼬셔도 큰 반응이 없었다.
그러다 내가 조금씩 준비해서 휴직하고, 퇴사하는 몇 년의 과정을 지켜보며 그의 마음이 조금씩 변했다. 그리고 고민 끝에 퇴사했다. 그가 퇴사하기까지는 오랜 시간과 큰마음이 필요했기에, 제주에 온 것만으로도 그가 가진 용기를 다 쓴 것일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삶의 방향을 함께 전환해 준 것만으로도 그에게 매일 감사했다. 그런 그가, 치앙마이에 다녀오고 크게 변했다.
그 변화가 어떤 일을 만들어낼지 아직은 모르겠다. 나는 어떤 일을 오래오래 생각하는 편이고, 생각이 깊어져 결과물을 내는 속도가 더딘 편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것 하나는 안다. 생각은 시작되었다는 것. 속도가 느리더라도 언젠가 결과물은 나온다는 것.
그러니 지금처럼 좋아하는 노래를 듣고, 책을 읽고, 커피를 마시고, 일을 하며 일상의 궤도를 회복할 것이다. 지금 내게 주어진 것들을 천천히, 충분히 음미하다 보면, 언젠가 또 다른 일상이 자연스럽게 자리 잡을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흔들림도 있겠지만, 궤도를 살짝 벗어나니 새로운 항로가 보였던 것처럼 흔들리면서 조금씩 넓어질 나의 세계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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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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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행 중/예정 행사, 프로그램 소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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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월 편집자의 일일 책방지기 소식 ✦
이월 편집자가 4월부터 제주시 조천읍 동네책방 [북카름]에서 일일 책방지기를 하게 됐어요. 최 이사와 함께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을게요. 공간 대여 서비스 이용 시 음료가 포함되는데요. 최이사가 스페셜티 핸드드립 커피 정성스럽게 내려 드릴 거예요. 따뜻한 봄날, 멋진 책과 커피 향 가득한 북카름으로 놀러 오세요. 😍
📌 이월 편집자 출근일 : 4월 7, 11, 14, 25, 28일
📌 북카름 이용 방법 (네이버 예약 바로 가기)
- 독서 공간은 1인 1만 원 이용 요금을 받고 있어요. (1시간, 음료 1잔 포함)
- 도서 + 음료 구매시, 독서 공간을 1시간 무료로 이용할 수 있어요.
- 독서 공간 이용은 예약하신 분 우선 사용이에요. 워크인 방문 시 잔여석이 있는 경우 사용 가능해요. 혹, 이용을 못하시더라도 양해 부탁드립니다. 🙏
앞으로 오프라인 독서 모임, 글쓰기 모임, 출판 상담 등 알찬 프로그램도 준비해 볼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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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전 독서 모임 ✦
일시 ㅣ 2026. 4. 15. (수) 20:30
장소 ㅣ 온라인 (구글 미트)
비용 ㅣ 무료
내용 ㅣ 오스카 와일드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1890>
준비
- 인상 깊은 구절과 이유
- 함께 나누고 싶은 질문
- 내 삶과 연결되는 부분
신청 ㅣ 4월 6~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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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신)
14통의 편지를 보내는 동안, 단 한 편도 쉽게 써진 적이 없습니다. 대단한 글을 쓰는 것도 아니면서, 적당히 쓰고 싶지 않은 욕심에 붙잡고 있다보니 발행일이 늘 들쑥날쑥했습니다. 묵묵히 기다려 주신 여러분들께 죄송하고 감사한 마음을 전합니다.
앞으로는 본격적인 출간 작업과 일일 책방지기 활동, 텃밭 공동체 활동과 유기견 보호소 봉사, 독서 모임과 글쓰기 모임 운영으로 바쁜 일상을 보낼 것 같습니다. 여유에서 오는 다정한 마음을 잃지 않기 위해 당분간 격주 금요일에 편지를 보내려 합니다. 소소한 소식은 인스타그램으로 자주 전할게요. 뉴스레터에는 인스타그램에서 나누지 않은 재미난 이야기 꾹꾹 담아 오겠습니다. 언제나 감사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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