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과 점, 사람과 사람의 연결
만남의 달 5월. 작년 구미 북페어에서 인연을 맺은 김에녹 작가님 부부가 제주도를 찾았습니다. 김에녹 작가님은 여행 작가이신데요. 10년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자신에게 ‘오사카 한 달 살이’라는 멋진 선물을 하고 <한 달의 오사카>라는 책을 내기도 하셨어요.
처음 북페어에서 작가님 부부를 봤을 때, 밝은 에너지가 인상적이었어요.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부부가 함께 퇴사했다는 점, 연고가 없는 지방으로 이주했다는 점, 그리고 경제적 가치보다 두 사람이 함께하는 시간과 자유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는 점이 저희 부부와 닮아 첫 만남부터 쉽게 공감대가 형성됐습니다.
당시에는 작가님이 사는 경주와 제가 사는 제주에 서로 가게 되면 연락하자는 막연한 약속을 남기고 헤어졌습니다. 보통은 그렇게 스쳐 지나가는 인연이 많은데, 그 약속이 정말 이루어졌습니다. 작가님이 지인의 결혼식으로 제주에 오면서 연락을 준 것이죠. 첫 만남이 짧은 인사 나눔 정도였음에도 저희 부부를 기억해 준 마음이 고마웠습니다.
어색할까 염려했던 것과 달리, 대화에서 웃음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작가님은 저보다 나이가 어리지만 퇴사 선배님이거든요. 홀로서기 이후 어떤 시간을 보냈는지, 나만의 길을 찾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듣다 보니 제 앞날을 미리보기 하는 것 같아 공감이 많이 됐어요.
저도 학교 밖으로 나온 지 어느덧 1년 반이 되어갑니다. 퇴사 전 휴직 기간까지 합치면 2년 반이라는 시간이 흘렀네요. 2009년에 교직에 들어가 15년간 쉼 없이 달렸고, 잠시 쉬어가려 2024년에 휴직을 했습니다. 하지만 쉬지 못하는 성향이 휴직 기간에도 발휘되었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책'으로 1년을 채우겠다는 야심찬 마음으로 북스타그램을 시작했습니다. 열심히 읽다 보니 이제는 내 이야기가 하고 싶어서 글쓰기 모임을 만들었고, 그 모임에서 만난 글들이 너무 좋아서 사람들 이야기를 글과 책으로 만드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마음먹으며 출판사까지 열게 되었죠. 이렇게 정리하고 보니 참 간단해 보이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책과 영상으로 1인 사업가들의 이야기를 많이 접하긴 했지만, 제 주변에는 교사가 90% 이상이고 그들의 배우자 역시 공직에 있거나 회사원이기에 1인 사업가들이 어떤 마음과 상황에 놓여있는지 잘 몰랐습니다. 그래서 막연히 동경하고, 어서 빨리 독립하고 싶다고 생각했지요.
하지만 1인 사업가가 되니, 15년간 해오던 일의 방식이 삐그덕거렸습니다. 세상에 쉬운 일은 없다는 말을 절감하는 요즘입니다. 매일매일 풀기 어려운 과제를 부여받는 기분이거든요. 정해진 일과와 해야 할 일이 명확한 곳에 있다가, 내가 스스로 생각하고 움직이지 않으면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는 곳에 있으니 적응이 쉽지 않습니다. (학교 안팎에서 치열하게 살던 교사라, 스스로 잘할 줄 알았습니다만 현실은…?!)
새하얗고 드넓은 캔버스 앞에 아주 연한 연필을 들고 서 있는 기분이랄까요. 어디부터 어떤 그림을 그려야 할지 모르겠고, 시작한다 한들 이 작고 연한 펜이 그리는 선이 눈에 보이기나 할지, 언제쯤 이 커다란 캔버스에 큰 그림이 완성될지 막막한 마음이 들곤 합니다. 작은 점이라도 몇 개 찍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그런 저에게 새로운 길을 가는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듣는 일은, 작은 점을 찍어가는 행위 같습니다. 나보다 먼저 점을 찍고, 그 점을 이어 선을 만들고, 그 선으로 저마다의 그림을 그려가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면 작은 희망이 보입니다. 물론 당사자는 본인이 어떤 그림을 그리고 있는지 모르는 경우도 있지만, 조금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저에겐 희미한 선들이 보이거든요.
오늘처럼 생각을 정리하며 글을 쓰는 날이면 생각합니다. 밤하늘의 별들이 거대한 우주 속에서는 멀리 멀리 떨어져 서로의 존재를 모르지만, 지구에서 올려다보면 보이지 않는 선으로 연결되어 별자리를 만드는 것처럼 내가 찍고 있는 이 작은 점들도 멀리서 보면 연결되어 보이지 않을까. 먼 훗날 내 삶을 돌아보면 그래도 나름 어떤 그림이 그려져 있지 않을까.
김에녹 작가님은 더워지기 시작할 즈음 구마모토 한 달 살이를 떠난다고 합니다. <한 달의 구마모토(가제)>를 집필하기 위한 여정이라고 하는데요. 일본 전문가도 아니고, 일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것도 아닌 그가 일본 여행 에세이를 쓰기까지, 그가 찍어온 수많은 점 이야기를 듣고 나니 그에게 작가라는 호칭보다 ‘인생의 탐험가’라는 말이 더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작가님이 이번에는 어떤 점을 찍고 돌아올지 기대됩니다. 그 모습이 제 그림에 어떤 영감을 줄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