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이름을 어떻게 정했냐고요? 출판사 대표님들 이야기를 들으면 가벼운 마음으로 출판사 등록을 하러 가고, 가는 길에 출판사 이름을 정했다는 이야기가 많더라고요. 걱정 많고 생각 많은 저에게는 가당치 않은 말이었습니다. 미리미리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했지요.
그런데 생각이 안 나는 겁니다. 퇴직 처리 기간 동안 충분히 생각할 수 있었건만 머릿속이 텅 비어 있었습니다. 그러다 출판사 등록일 일주일 전에 부랴부랴 생각하기 시작했죠.
오글오글, 오글, 느릿, 스토리앤드, 낮과여름, 모어북, 아우어북… 메모장에 쓰인 이름이 92개였습니다. 그 이름을 하나하나 '출판사 검색 시스템'에 넣고, 중복되지 않는 이름만 메모장에 남겼습니다. 그리고 살아남은 이름을 구글링해 봤지요. 다른 업종의 업체명과 겹치면 곤란할 것 같아서요. 그런데 세상에 좋은 말은 이미 다 사용하고 있더군요. 한 발, 아니 열 발 늦는 바람에 처음 생각했던 이름은 애저녁에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그런 과정을 거쳐 마지막까지 메모장에 남은 이름을 며칠 노려봤습니다. 최 이사와 함께 매일 저녁 식사 후 메모장을 노려봤지요. 어떤 날은 오글이 좋았다가, 어떤 날은 느릿이 좋았다가 오락가락하는 날이 반복되었습니다. 정말 괴로운 나날이었죠. (아이 이름 지을 때 얼마나 고민하셨나요? 세상 모든 부모님, 존경합니다.)
어쨌든 출판사를 낳아 잘 키워야 하는 손 대표의 시름은 깊어 갔습니다. 하지만 진척은 없었지요. 이름 하나 정하는 게 이리 어려운데, 앞으로 책은 어떻게 만드는지 고민만 늘었습니다. 하다 하다 지쳐서 '누가 출판사 이름을 검색하나, 책 이름 검색하지. 책이나 잘 만들자'라며 손을 놔버렸습니다.
그러다 생각난 이름이 이월오일이었습니다. 의미 따위 집어치우고, 2월 5일에 출판사 등록하러 가기로 했으니 이월오일로 하자는 거였죠. 하지만 이 또한 최종 결정하지 못하고, 후보에 올린 채 시간은 흘렀습니다.
3, 2, 1. 디데이 카운트가 시작되었습니다. 최 이사와 손 대표는 모든 걸 내려놓았습니다. 후보 중 등록 당일에 꽂히는 것으로 결정하자고 마음먹었죠. 하지만 걱정 많고 허세 심한 손 대표는 그럴 수 없었습니다. 내 출판사가 멋들어진 이름이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지요. 손 대표가 만나는 작가님들이 ‘○○ 출판사와 계약했어’라고 말할 때 부끄럽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고민 끝에 소중한 작가님들이 계신 단체 톡방에 투표를 올렸습니다. 오글오글 글쓰기 모임의 시조새 《오글오글 씁니다》 작가님들 톡방과, 《인생 쓰고 나면 달고나》 작가님들 톡방 두 군데였지요. 사랑과 의리가 넘치는 톡방답게 투표를 올리자, 순식간에 투표가 완료됐습니다.
《인생 쓰고 나면 달고나》 작가님들 톡방에선 만장일치로 ㅇㅇ이 채택됐습니다. 최 이사와 손 대표는 그쪽으로 마음이 기울었지요.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요. 《오글오글 씁니다》 톡방에서는 ㅁㅁ이 다수 의견으로 채택된 것입니다. 최 이사와 손 대표는 다시 그쪽으로 마음이 기울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화장실 가기 전에는 ㅇㅇ, 점심 먹고서는 ㅁㅁ. 그 패턴이 무한 반복됐습니다.
2월 4일 밤 12시. 최 이사와 손 대표는 마지막 결단을 위해 맥주와 견과류를 준비해 책상 앞에 앉았습니다. 마지막 후보 6개를 노려봤죠. 잠이 쏟아졌습니다. 피곤했어요. 최 이사는 요 며칠 새벽 2시까지 집안일을 하다 잠들었고, 손 대표는 작고 소중한 오글오글 글쓰기 모임에서 아침과 저녁 온라인 모임을 하느라 피곤했거든요. 메모장을 노려보는 눈이 따가워서 눈을 감고 생각하면 어떨까 했습니다. 안방에 들어가 이불을 덮고 누워 편안히 생각에 잠겨 보기로 했지요.
그렇게… 최 이사와 손 대표는 잠이 들었습니다. 눈을 뜨니 2월 5일, 그날이었습니다. 저는 아침 글쓰기 방에서 책을 읽고, 글쓰기 모임 톡방을 종횡무진하며 이일 저일 하느라 바빴지요. 최 이사가 반차를 쓰고 집에 왔을 때까지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았어요. 무슨 서류가 필요한지 책으로(만) 공부하며 잘난체하던 손 대표는 정작 당일이 되자 우왕좌왕했습니다.
시청으로 출발하기 1시간 전, 책상 앞에 앉았습니다. 탄생과 함께 주어지는 이름은 수명이 다할 때까지 함께 합니다. 그런 이름에 아무 이유가 없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메모장을 열어 (이제서야) 이름과 얽힌 스토리를 적어 가기 시작했죠.
그러다 이월오일 밑에 시작, 탄생일, 새로운 탄생이라는 말을 적는 저를 발견했습니다. 순간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었습니다. ‘2월 2일은 내 생일. 내가 탄생한 날. 2월 5일은 출판사가 탄생하는 날. 내 삶이 바뀌는 날. 내가 다시 태어나는 날.’
문득 아침에 읽었던 《데미안》 속 문구가 떠올랐습니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알을 깨고 나오기 위해 고독한 투쟁을 벌이는 싱클레어가 저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의 세계를 깨뜨리고 다른 세계로 나아가려던 그간의 몸부림이 머릿속에 재생됐습니다. 아, 이거구나 생각했지요.
순식간에, 2월 독서 모임 책이 《데미안》으로 정해진 것, 오늘 아침 독서를 하다 《데미안》 속 문장을 만난 것이 떠올랐습니다. 모두 운명처럼 느껴졌지요. 머릿속이 시원해졌습니다.
출판사 등록을 하러 시청으로 떠나기 한 시간 전, 그렇게 이월오일이 탄생했습니다.